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문단 편집) == 가족 관계 == *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 * 장녀 이멜다 마르코스 2세 (일명 아이미 마르코스): 1955년생. 1984년 일로코스 노르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나, 아버지가 축출되면서 [[하와이]]로 망명했다. 그러나 12년 이후 귀국해 다시 일로코스 노르테 주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0년 이래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를 지내고 있다. 2019년 5월 아들에게 주지사직을 넘기고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https://news.joins.com/article/23476520|#]] * 외손자 매튜 조셉 마노톡 (Matthew Joseph Manotoc): 아이미 마르코스의 막내아들. 2016년 일로코스 노르테 주에서 지방의원에 당선되었고, 2019년 어머니의 뒤를 이어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 장남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일명 봉봉 마르코스): 1957년생. 외아들로, 23세 때 마르코스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 주의 부주지사를 지낸 이래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6년 마르코스가 축출되면서 잠시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1991년 귀국, 이후 일로코스 노르테 주에서 다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후 같은 동네에서 주지사와 하원의원직을 번갈아 지냈다. 2010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2016년 부통령 선거에 출마해 3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특히 마르코스가 태어난 곳인 사랏(Sarrat)에서는 무려 97.5%를 득표했다. 하지만 결국 낙선했다. [[역사수정주의|역사책을 수정]]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328852|#]] 그러다 기어코 2022년 대선에 출마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연히 반대측에선 우려가 나왔다. * 차녀 아이린 마르코스 * 3녀 에이미 마르코스: 마르코스 부부가 입양한 자녀. 마르코스는 [[1949년]]부터 카르멘 오르테가(Carmen Ortega)라는 여성과 같이 살며 사실혼 관계로 세 자녀를 두다가 1953년 8월에 약혼한 상황이었으나, 1954년 4월에 이멜다 트리니다드 로무알데스(Imelda Trinidad Romualdez)라는 미인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 만난지 고작 11일 만인 1954년 4월 17일에 결혼하고는 1남 2녀를 뒀다. 사실 페르디난드는 이멜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 11일 동안 하루에 1개씩, 총 11개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냈으나 그럼에도 그녀가 마음을 두지 않자 언젠가 영부인이 될 생각은 없냐고 물어봤고, 이에 이멜다는 결혼을 승낙했다. 이렇게 결혼한 [[이멜다 마르코스]]는 1975년부터 1986년까지 마닐라 주지사를 지냈고,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벽 때문에 '인류 역사상 가장 사치스러운 인물'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것은 물론이고 마르코스의 사후에도 필리핀 사람들 대다수는 '[[엘레나 차우셰스쿠|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용서할 수 있어도 이멜다 마르코스는 용서할 수 없다]]'라고까지 말할 정도다. 그러나 마르코스는 결혼 후에도 불륜 스캔들을 일으켰는데, 1968년부터는 도비 빔즈[* Dovie Beams, 1932~2017. 참고로 그녀가 필리핀에 온 이유는 마르코스가 의뢰하고 자금을 지원하여 제작된 마르코스의 거짓된 항일투사 경력을 찬양하는 영화인 마하를리카(Maharlika)를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참고로 마하를리카는 필리핀 [[루손]]에 있는 고대 [[타갈로그]] 사회의 봉건 전사 계급을 의미하는 말인데, 마르코스는 필리핀의 민족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고속도로, 방송국, 대통령궁의 리셉션 구역에 '마하를리카'라는 이름을 붙였다.]이라는 이혼녀 출신의 미국인 여배우와 2년여간 부적절한 관계를 맺다가 도비 빔즈가 몰래 침대 밑에 녹음기를 설치하여 녹음된 음성 기록들이 1970년에 폭로되어 필리핀 내에서 큰 스캔들로 비화되었다. 이때 필리핀의 대학생들은 대학교 캠퍼스의 라디오 방송국에다 마르코스의 은밀한 녹음을 쉴틈없이 틀어대며 마르코스를 조롱했다[* 이 스캔들 때문에 영화 '마하를리카'는 마르코스 집권기에 상영이 금지되었고, 1987년에야 겨우 개봉했으나, 평론가들에게는 완성도가 떨어진다며 'D급 영화'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런데도 마르코스는 1970년경에 또다시 [[플레이보이]]지 모델 출신인 에블린 헤계시(Evelin Hegyesi)와 관계를 가지고 아날리자 요제파(Analisa Josefa)라는 딸을 낳기까지 했는데, 아날리자 요제파는 후에 국제적으로 유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외에도 마르코스 일가는 여러 요직을 역임했는데, 실제로 마르코스는 친척들에게 정부 관련 업무를 맡겼고, 종종 현금 수입이 있는 기관이나 국유 기업을 담당하게 했다. 페르디난드의 여동생 엘리자베스 마르코스-케온(Elizabeth Marcos-Keon)은 1971년부터 1983년까지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를 역임했고, 남동생 파시피코 마르코스(Pacifico Marcos, 1919~?) 역시 필리핀 의료 의원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광업, 코코넛 정제 및 경영 컨설팅과 관련된 최소 14개의 민간 기업을 통제하거나 보유했다. 게다가 마르코스의 어머니도 아들이 집권할 동안 10개 이상의 회사의 이사회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르코스 부부의 장녀인 아이미 마르코스(Imee Marcos, 1955~) 역시 1984~1986년까지는 단원제 의원을 역임했고, 1998~2007년까지는 하원의원을 역임한 후 2010년부터 2019년까지는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를 역임하다가 주지사직에서 물러난 직후에는 필리핀의 상원의원이 되어 2023년 현재까지도 상원의원을 역임하고 있다. 그녀는 아버지가 집권할 동안 엄청난 사치를 즐겼는데, 보석과 맨션들을 즐겨 구매한 것은 당연했으며 그녀가 대학교 생활을 할 때에는 교실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대학교 자체 정책을 깨고는 그녀가 수업하는 강의실 한정으로는 에어컨을 설치하도록 했으며, 심지어는 자녀를 필리핀에 두고 유럽을 여행할 때에 자녀들에게 모유를 수유하기 위해 아버지가 보낸 [[필리핀 항공]]의 특별 항공편을 모유 택배로 쓰기까지 했는데, 이 때문에 필리핀 항공의 많은 비행이 지연되거나 취소되어 유럽에 살고 있거나 유럽을 여행하던 많은 필리핀인들이 불평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녀는 3개의 대학교와 1개의 고등학교의 졸업증을 위조하여 2번이나 공개적으로 최우등으로 졸업한 것처럼 학력을 위조하기도 했는데, 그녀는 자신이 '[[프린스턴 대학교]]를 우등 성적으로 졸업한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인 것처럼 가장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경영학 석사 학위를 위조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이미 마르코스는 '''[[살인]]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되기도 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75년에 청소년에게 지역 사회 문제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정부의 개발 노력을 청소년에게 알리는 정부 수단을 제공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카바탱 바랑가이(Kabataang Barangay)라는 청소년 조직을 만들고 장녀인 아이미 마르코스를 회장으로 앉혔는데, 1977년 8월 31일에는 그녀가 연사로 참여한 포럼에서 아르키메데스 트라자노(Archimedes Trajano, 1956~1977)라는 대학생이 "카바탱 바랑가이를 대통령의 딸이 맡아야 합니까? 대통령의 딸이 아니었다면 자리를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으나, 아이미 마르코스는 이 말을 듣고 짜증을 냈으며, 결국 트라자노는 아이미 마르코스의 경호원들에게 끌려가 무자비한 구타와 고문을 당한 끝에 동년 9월 2일에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물론 언론 통제로 인해 이 사건은 신문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이 사건 때문에 아이미 마르코스는 아버지의 축출 직후에 트라자노의 어머니의 소송으로 1986년에 재판에 회부되어 결국 살인 혐의로 유죄가 인정되어 징벌적 손해배상금으로 250만 달러, 어머니에게 정신적 고통 배상금으로 125만 달러를 지불하라는 판견을 받았으나, 그럼에도 아이미 마르코스는 2016년 11월에는 '아버지가 집권할 동안 난 권력을 가지기엔 너무 어렸다[* 참고로 이버지가 축출될 시점에 아이미 미르코스의 나이가 31세였다.]'는 황당한 발언을 남겨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며, 2018년 10월에는 아버지 집권 하에서의 인권 침해에 대해 '법정에서 입증되지 않은 정치적 고발'이라는 말을 남기기까지 했다. 장남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역시 고모의 뒤를 이어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를 역임했고, 아버지의 사후에도 하원의원과 상원의원도 지내면서 아버지의 만행을 정당화하며 이에 대한 사과를 거부한 것을 넘어[* 심지어 1999년에는 자신의 아버지의 독재로 인한 피해자들에게 '그들은 사과를 원하지 않고 돈을 원한다. 내 가족이 잘못한 경우에만 사과하겠다.'라는 막말을 남기기도 했다.] 늦어도 2016년부터 지지자들을 동원해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 등지에 '편향된' 언론이 간직한 '숨겨진 역사'라며 아버지의 집권기가 필리핀의 황금기였다고 선전했고, 덤으로 이 주장의 출처가 '저명한 학자들의 연구'인 것처럼 가장했다. 이는 필리핀의 신세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결국 '봉봉 마르코스'는 [[2022년]]에 [[필리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차녀인 아이린 마르코스(Irene Marcos, 1960~)는 1983년에 당시 가치로만 1,030만 달러가 든 결혼식을 올리고 아버지의 축출 후에는 1985년 9월에 대통령 전용 요트인 앙 파굴로(Ang Pangulo)에서 호화 파티를 즐기는 영상이 유출되어 구설수에 올랐고,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르코스 부부의 자녀 중에서는 유일하게 공직에 오르지 않고 아버지를 부적절하게 미화하지 않으며 비교적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